세티 1세
인물
세티 1세는 기원전 13세기 고대 이집트 제19왕조의 두 번째 파라오(이집트 왕의 칭호)이다. 람세스 2세의 아버지이며, 출애굽기에 나오는 '바로'가 누구인지 따지는 논의에서 이름이 거론된다.
생애
세티 1세는 이집트 신왕국 제19왕조의 첫 왕인 람세스 1세의 아들로 알려져 있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제19왕조의 두 번째 왕이 되었다. 고대 이집트의 연대는 학자들이 쓰는 연대 체계에 따라 달라지는데, 오늘날에는 그의 재위를 기원전 1294년~1279년 또는 기원전 1290년~1279년으로 보는 견해가 널리 쓰인다. 예전 연대 체계에서는 기원전 14세기 말로 잡기도 했다. 재위 기간도 11년이라는 설과 15년이라는 설이 함께 있다. 출생 연도는 확실하지 않다. 그가 세상을 떠난 뒤 아들 람세스 2세가 왕위를 이었다.
'세티'라는 이름은 이집트 신화의 신 세트(Set)를 섬기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그리스어로는 '세토스 1세'라고 부른다.
업적
세티 1세가 즉위하기 전, 이집트는 제18왕조 아케나텐 왕의 종교 개혁 이후 이어진 혼란에서 막 벗어나던 참이었다. 세티 1세는 나라 안을 안정시키고, 원정을 벌여 시리아의 카데시 지방까지 나아가 잃었던 영토를 상당 부분 되찾은 것으로 평가된다.
건축 유적도 남겼다. 아비도스에 지은 신전 벽에는 초대 파라오부터 세티 1세와 람세스 2세까지 역대 왕들의 이름을 새긴 '아비도스 왕명표'가 남아 있으며, 고대 이집트 역사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쓰인다. 무덤은 룩소르 '왕들의 계곡'에 있다. 2010년 이집트 유물최고위원회가 이 무덤 안쪽으로 뚫린 길이 약 174m의 터널을 끝까지 발굴했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한국 교회와의 관련
세티 1세는 성경에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 출애굽기는 이스라엘 백성을 억압한 이집트 왕을 이름 없이 바로라고만 부른다. 그래서 출애굽이 언제 일어났는지, 그때의 바로가 누구였는지를 따지는 논의에서 세티 1세가 후보로 거론된다.
이 논의는 크게 두 견해로 나뉜다.
- 이른 연대설: 열왕기상 6:1의 "480년"을 문자 그대로 계산하여 출애굽을 기원전 15세기 무렵으로 본다. 이 경우 세티 1세는 출애굽과 관계가 없다.
- 늦은 연대설: 출애굽기 1:11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국고성 비돔과 라암셋을 건축했다고 한 기록과 고고학 자료를 중시하여 출애굽을 기원전 13세기 무렵으로 본다. 이 견해에서는 세티 1세나 그 아들 람세스 2세를 이스라엘을 억압한 바로나 출애굽 당시의 바로로 보는 주장이 나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 교회의 성경공부 교재와 주석, 성경 지도 등은 출애굽 연대를 설명하면서 두 견해를 함께 소개하는 경우가 많다. 다만 어느 견해를 지지하는지는 교단에 따라 갈리기보다 학자와 해석자 개인에 따라 다르다.
평가
세티 1세는 신왕국의 혼란을 수습하고 영토를 되찾은 유능한 왕으로 평가받지만, 이름난 아들 람세스 2세에 가려 덜 알려져 있다. 성경 연구에서는 성경의 연대와 고대 이집트 역사를 맞추어 보는 과정에서 거론된다. 그러나 성경이 바로의 이름을 밝히지 않고 이집트의 연대 체계도 학자마다 달라서, 세티 1세가 출애굽과 관련된 바로인지는 확정되지 않았다.
함께 보기 8
참고한 자료 6곳
- 세티 1세 - 위키백과
- 세티 1세 - 나무위키
- 세티 1세의 무덤 통로 발견 - KOFICE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 고대 이집트 문명 속으로 한 걸음 들어서니···신, 파라오가 숨쉬고 있네 - 경향신문
- '3300년 된' 이집트 비밀무덤 발굴…길이만 175m - 네이트 뉴스
- Seti I - Religion Wi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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