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활란
인물
김활란(金活蘭, 1899~1970)은 감리교 신자 교육자이자 여성운동가이다. 이화여자전문학교 첫 한국인 교장과 이화여자대학교 총장을 지냈고, 한국 YWCA 창립에 참여했다. 일제 말기 행적으로 친일 논란이 있다.
생애
1899년 인천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 이름은 기득(己得)이었다. 세례명 '헬렌'을 한자로 옮긴 '활란'을 이름으로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화학당을 1918년에 졸업하고 모교 교사가 되었다. 1922년 미국으로 건너가 오하이오 웨슬리언 대학과 보스턴 대학에서 공부했다. 1931년에는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한국 농촌 교육을 다룬 논문으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아 '한국 여성 최초의 박사'로 불린다.
1939년 선교사 앨리스 아펜젤러의 뒤를 이어 이화여자전문학교의 첫 한국인 교장이 되었다. 이후 이화여자대학교 총장으로서 1961년 정년퇴직할 때까지 학교를 이끌었다. 한국전쟁 중이던 1950년에는 공보처장을 지냈다. 1970년 2월 10일 세상을 떠났다.
사역과 업적
- 전도와 계몽: 1920년 교사·학생들과 '이화전도대'를 꾸려 각지를 돌며 전도와 농촌 계몽 강연을 했다.
- 여성 운동: 1922년 김필례·유각경 등과 함께 조선여자기독교청년회 창립에 참여했다. 이 단체가 한국 YWCA의 시작이다. 1959년부터 세상을 떠날 때까지 한국여성단체협의회 회장을 지냈다.
- 국제 활동: 1928년 예루살렘에서 열린 국제선교협의회 대회에 신흥우 등과 함께 참석했다.
한국 교회에 끼친 영향
감리교 여성 선교사들이 세운 이화에서 자랐다. 선교사가 시작한 기독교 여성 교육을 한국인이 이어받은 첫 세대 지도자로 꼽힌다. YWCA를 통해 교회 여성들이 농촌 사업과 사회 활동에 나서는 길을 열었다. 은퇴 뒤에도 대한기독교교육자협회 회장, 전국복음화운동 명예회장 등을 맡았다.
평가
평가는 크게 엇갈린다.
- 업적을 강조하는 시각: 그를 여성 교육과 여성 운동의 선구자로 본다. 이화여자대학교는 1998년 그의 호 '우월(又月)'을 딴 '우월 김활란상'을 만들었다.
- 친일 행적에 대한 비판: 그는 '아마기 가쓰란(天城活蘭)'으로 창씨개명했다. 1941년 12월에는 조선임전보국단이 연 결전부인대회에서 여성의 전쟁 참여를 독려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2009년 펴낸 『친일인명사전』에 그를 실었다. 대통령 소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는 2009년 11월 27일 그를 제3기(1937~1945년) 친일반민족행위자로 발표했다. 이화여자대학교 교정의 동상을 두고도 비판이 이어져 왔다.
그가 교장이 된 1939년은 일제가 기독교계 학교를 넘겨받거나 문을 닫게 하면서 선교사 교장을 한국인으로 바꾸던 시기였다.
함께 보기 7
참고한 자료 10곳
- 김활란 - 우리역사넷(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김활란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김활란 - 위키백과
- 김활란: 한국 근대 여성 기독 지식인의 초상 - 복음과상황
- 김활란 - 기독교타임즈
- 여성 운동의 전개와 YWCA의 시작 - YWCA아카이브
- '친일행위' 1005명 최종 명단 발표 - 경향신문
-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 - 위키백과
- 김활란, 친일파의 대모 밀정의 처제 - 코리아 히스토리 타임스
- 이대 김활란賞 제정 - 한국일보
본문은 이 자료들을 참고해 새로 쓴 글이며, 자료의 글을 옮겨 싣지 않았습니다.
토론 0
이 문서에 대한 의견, 다른 관점, 고칠 점을 남겨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