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욱
인물
최영욱(1891~1950)은 광주에서 활동한 기독교인 의사이다. 광주제중원 의사로 일했고 광주YMCA 회장을 지냈으며, 미군정 때 전라남도지사를 맡았다. 한국전쟁 중 조선인민군에게 죽임을 당했다.
생애
최영욱은 1891년 전라남도 광주에서 태어났다. 한자 이름은 자료에 따라 崔泳旭 또는 崔永旭으로 적혀 있다. 광주 지역의 초기 기독교 지도자인 최흥종 목사가 그의 이복형이다. 세브란스에서 의학을 공부했다고 알려져 있으며, 미국 의과대학을 졸업했다는 기록도 있다.
1918년 6월 20일, 광주제중원(지금의 광주기독병원) 의사로 일하던 최영욱은 교육자 김필례와 결혼하였다. 결혼한 뒤 부부는 의료 활동을 하러 중국 치치하얼의 한인 마을로 갔다. 그러나 어머니가 병이 나자 곧 돌아와 광주에 자리 잡았다고 전해진다. 이후 광주에서 서석병원을 운영하였다.
1945년 해방 뒤 미군이 전라남도에 들어오자, 미군정 아래 첫 전라남도 부지사(副知事, 도지사를 보좌하는 자리)로 임명되었다. 1946년 미군정이 한국인을 도지사에 앉히면서 전라남도지사가 되었다. 지사직에서 물러난 뒤에는 다시 병원을 운영하였다. 1947년에는 호남신문 사장을 맡았다.
1950년 한국전쟁 중 조선인민군에게 붙잡혀 광주형무소에 갇혔고, 그곳에서 죽임을 당하였다. 사망일은 자료마다 다르다. 8월 30일 총살당했다는 기록도 있고, 9월 25일 숨졌다는 선교사의 편지도 있다.
사역과 업적
- 기독교 의료: 미국 남장로교 선교부가 세운 광주제중원에서 의사로 일하였다. 그 뒤에는 개업의로 활동하였다.
- 광주YMCA: 의사로 일하면서 광주YMCA(기독교청년회) 회장을 지냈다. 이를 통해 지역 기독교 청년 운동에 참여하였다.
- 한센병 시설 지원: 군정 초기에 전남 경찰협회가 운영하던 소록도와 애양원의 운영권을 도가 넘겨받았다. 그는 그 운영을 광주 선교사인 의사 윌슨(우월순)에게 맡기는 일을 적극 지원했다고 알려져 있다.
한국 교회에 끼친 영향
최영욱 집안은 해방 전후 광주 기독교계의 중심에 있었다. 이복형 최흥종 목사, 아내 김필례와 함께였다. 최영욱이 도지사가 된 데에는 광주 사회의 지도자 김천배가 자리를 양보하고 그를 추천한 일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이는 해방기 호남에서 기독교 지식인이 공직에 들어간 사례로 꼽힌다. 아내 김필례는 1950년 장로교 여전도회 전국연합회 회장으로 뽑혔다. 남편이 죽을 무렵 그는 미국 북장로교 여전도회 대회에 한국 대표로 가 있었고, 1951년에 돌아왔다.
평가
1950년 10월 22일 선교사 유화례(Florence Root)가 쓴 편지가 남아 있다. 편지에 따르면, 함께 갇혔던 기독교인 세 사람이 "그가 회개하고 참된 기독교인으로 생을 마쳤다"고 그의 어머니에게 전했다고 한다. 그의 생애는 주로 김필례의 전기와 지역사 자료에 함께 실려 전해진다. 그를 따로 다룬 연구는 많지 않다. 학력과 사망일 등 세부 사실도 자료마다 달라 더 확인해야 한다. 미군정기 공직 활동을 따로 다룬 학계의 평가나 비판은 이번 확인 과정에서 찾지 못하였다.
함께 보기 7
참고한 자료 5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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