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코프스 재판
역사 · 같은 말: 원숭이 재판
스코프스 재판은 1925년 미국 테네시주 데이턴에서 고등학교 교사 존 T. 스코프스가 공립학교의 진화론 교육을 금지한 주법(버틀러법)을 어긴 혐의로 재판을 받은 사건이다. '원숭이 재판'이라고도 불린다.
배경
1920년대 미국 개신교에서는 전통 교리와 성경의 문자적 권위를 지키려는 근본주의 진영과, 현대 학문을 받아들여 신앙을 새롭게 해석하려는 진영이 맞서고 있었다. 이 대립을 근본주의-현대주의 논쟁이라고 한다. 공립학교에서 진화론(생물이 오랜 시간에 걸쳐 변해 왔다는 과학 이론)을 가르치는 문제는 그 핵심 쟁점 가운데 하나였다. 근본주의 그리스도인들은 진화론이 성경(창세기)의 창조 이야기에 정면으로 도전한다고 보았다.
1925년 3월 테네시주 의회는 버틀러법을 통과시켰다. 이 법은 성경이 가르치는 인간 창조 이야기를 부정하는 이론, 그리고 인간이 하등 동물에서 내려왔다는 내용을 공립학교에서 가르치지 못하게 했다. 어기면 100~500달러의 벌금을 내는 경범죄였다. 미국시민자유연맹(ACLU)은 이 법이 헌법에 어긋나는지 법정에서 가리려고, 법에 맞설 교사가 있으면 변호와 비용을 맡겠다는 광고를 신문에 냈다.
전개
- 1925년 5월: 데이턴의 지역 유지들이 마을을 알릴 기회로 보고 이 제안에 응했다. 이들은 24세 교사 존 T. 스코프스를 피고로 내세웠다. 스코프스는 수학과 일반과학을 가르치면서 미식축구 코치를 맡고 있었고, 생물 교사 대신 수업한 적이 있었다. 주가 지정한 교과서인 헌터의 『시민 생물학』(A Civic Biology)에 진화론이 실려 있었다. 다만 스코프스 자신은 진화론을 실제로 가르쳤는지 확실히 기억하지 못했다고 알려져 있다.
- 1925년 7월 10일: 재판이 시작되었다. 검찰 측에는 대통령 후보로 세 번 나섰고 국무장관을 지낸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이 섰다. 변호 측은 이름난 형사 변호사 클래런스 대로가 이끌었다. 전국에서 기자들이 몰려들었다. 언론인 H. L. 멩켄이 붙인 '원숭이 재판'이라는 이름이 이때 널리 퍼졌다.
- 존 롤스턴 판사는 버틀러법이 위헌이라는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진화론과 신앙이 함께 설 수 있다고 증언하려던 과학자와 종교인의 전문가 증언도 배심원 앞에서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쟁점은 스코프스가 진화론을 가르쳤는지 하나로 좁혀졌다.
- 재판 일곱째 날: 더위 때문에 법정을 야외로 옮겼다. 대로는 브라이언을 성경 전문가 자격의 증인으로 불러 약 두 시간 동안 성경을 글자 그대로 해석하는 문제를 캐물었다. 판사는 나중에 이 증언을 기록에서 지웠다.
- 7월 21일: 대로는 상급 법원에 항소할 수 있도록 배심원단에 유죄 평결을 요청했다. 배심원단은 9분 만에 유죄를 평결했고, 판사는 법이 정한 최저액인 벌금 100달러를 선고했다. 이 때문에 브라이언은 준비해 둔 최종 변론을 하지 못했다.
- 7월 26일: 재판이 끝나고 닷새 뒤 브라이언이 잠자던 중 세상을 떠났다.
결과와 영향
1927년 1월 테네시주 대법원은 판사 한 명이 반대한 가운데 버틀러법을 합헌으로 판단했다. 주가 고용주로서 교사가 가르칠 내용을 정할 수 있다는 논리였다. 그러면서도 50달러가 넘는 벌금은 배심원이 정해야 한다는 주 헌법 규정을 들어 유죄 판결을 깨뜨렸다. 검찰이 사건을 다시 기소하지 않아 연방대법원 판단은 받지 못했다.
버틀러법은 그 뒤 다시 적용되지 않았고, 1967년 5월 주 의회에서 폐지되었다. 재판 뒤 여러 출판사가 생물 교과서에서 진화론 부분을 뺐다. ACLU는 재판 뒤 2년 동안 22개 주에서 진화론 금지 법안이 통과되지 못했다고 밝히고 있다. 1968년 미국 연방대법원은 비슷한 내용의 아칸소주 법이 수정헌법 제1조에 어긋난다고 판결했다.
평가
- 브라이언 쪽과 법을 지지한 사람들은 공교육 내용을 정하는 것이 주의 정당한 권한이라고 보았다. 또 이 법이 현대 과학의 도덕적 상대주의로부터 전통 가치를 지킨다고 주장했다.
- 변호 측은 성경이라는 특정 종교의 문서를 공립학교에서 진리의 기준으로 삼는 것은 정교분리(종교와 국가의 분리)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 당시 언론은 대로와 브라이언의 문답을 브라이언의 패배로 보도했다. 한편 대로 역시 종교를 냉소적으로 대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재판에서는 검찰이 이겼지만 진화론이 전국적인 관심을 받게 되었다는 점에서 양쪽 모두 얻은 것이 있었다는 평가도 있다.
- 변호 측이 부르려던 전문가 가운데에는 진화론과 신앙이 함께 설 수 있다고 보는 종교인도 있었다. 그리스도인 사이에서도 이 문제를 보는 견해가 갈렸던 것이다.
이 재판을 바탕으로 한 연극과 영화 「바람의 상속자」(Inherit the Wind)가 만들어졌다. 오늘날에도 창조와 진화 논쟁에서 상징적인 사건으로 자주 거론된다.
함께 보기 7
참고한 자료 15곳
- Scopes Trial (EBSCO Research Starters)
- Scopes Monkey Trial (Free Speech Center, MTSU)
- Tennessee v. Scopes 289 SW 363 (Encyclopedia.com)
- Scopes Trial (HistoryNet)
- Scopes Monkey Trial begins (History.com)
- Scopes Trial: Inherit the Wind & Butler Act (History.com)
- State v. John Scopes ("The Monkey Trial"): An Account
- State of Tennessee v. Scopes (ACLU)
- The Scopes trial ends (Linda Hall Library)
- The Scopes Monkey trial and the Constitution (National Constitution Center)
- TeVA: The Scopes "Monkey" Trial
- Scopes v. State (Studicata)
- Evolution on trial (University of Chicago Magazine)
- John T. Scopes (Wikipedia)
- Scopes trial (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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