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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택부(全澤鳧, 1915~2008)는 한국의 YMCA 운동가이자 기독교 역사 저술가이다. 서울YMCA 총무와 명예총무를 지냈다. 『한국기독교청년회운동사』, 『한국교회발전사』 등을 썼고, 한글 운동에도 힘썼다.

생애

1915년 2월 12일 함경남도 문천에서 태어났다. 호는 오리이다. 함흥 영생중학교에 다닐 때 광주학생운동의 영향을 받았다. 이 시기에 한동안 사회주의 사상에 기울었고 학생운동에도 참여했다. 그 뒤 일본 도쿄의 일본신학교에서 공부했으나 중퇴했다. 중퇴한 해는 1940년이라는 자료도 있고 1941년이라는 자료도 있다.

광복 뒤에는 잡지 편집자로 일했다. 1952년에는 어린이 잡지 《새벗》, 1954년에는 월간 《사상계》의 주간(편집 책임자)을 맡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57년 무렵부터 20여 년 동안 서울 YMCA(기독교청년회)에서 일했다. 1964년 총무가 되었고, 1975년부터는 명예총무로 활동했다. 2008년 10월 21일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93세였다.

사역과 업적

YMCA 재건

광복 뒤 오랫동안 제 기능을 하지 못하던 한국 YMCA를 다시 일으켜, 대표적인 시민운동 단체로 자리 잡게 한 인물로 꼽힌다. 평생을 YMCA와 함께해 "영원한 YMCA 맨"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기독교 역사 저술

  • 『한국기독교청년회운동사』(1978): 1899년부터 1945년까지의 한국 YMCA 역사를 다룬다. YMCA 역사를 처음으로 체계 있게 정리한 책으로 평가된다.
  • 『한국에큐메니칼운동사』(1979): 교파를 넘어선 연합 운동의 역사를 엮은 책이다. 부록에 1924년 조선예수교연합공의회의 규칙 같은 사료(역사 연구의 바탕이 되는 원자료)를 실었다. 2017년 홍성사에서 다시 펴냈다.
  • 『한국교회발전사』(1987, 대한기독교출판사): 한국 교회의 첫 100년을 돌아보고 선교 2세기를 내다보려고 기획된 네 권짜리 총서의 제1권이다. 나머지 세 권은 송길섭의 『한국신학사상사』, 이만열의 『한국기독교문화운동사』, 민경배의 『한국기독교사회운동사』이다. 부흥회와 전도 운동 등 한국 교회가 자라 온 과정을 다루며, 한국 교회 성장을 논하는 글에 자주 인용된다.

한글 운동과 사회 활동

1975년부터 한글 사랑 운동에 힘써 '재야 한글학자'로도 불렸다. 1991년 한글날이 공휴일에서 빠지자 이를 되살리는 운동을 벌였다. 이 운동은 2006년 한글날이 국경일로 지정되는 데 이바지한 것으로 평가된다. 장애인을 위한 사회운동에도 참여해 교남 소망의 집과 정립회관의 운영위원장을 지냈다. 방송심의위원으로 일했고, 지역감정 해소 운동에도 참여했다.

한국 교회에 끼친 영향

교회 연합 운동과 기독교 사회운동의 사료를 모아 정리한 점이 가장 큰 영향으로 꼽힌다. 한국 YMCA의 역사를 다루는 연구에서 그는 김천배·민경배와 함께 YMCA 역사를 정리해 온 사람으로 거론된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도 자기 기관의 기원을 설명할 때 그의 『한국에큐메니칼운동사』를 인용한다. 이처럼 그의 책들은 한국 개신교 역사와 에큐메니칼 운동을 연구할 때 기본 참고 자료로 쓰이고 있다.

평가

그는 교회 안의 목회보다는 YMCA를 중심으로 한 사회·시민운동, 그리고 기록과 저술을 통해 한국 기독교에 이바지한 인물로 평가된다. 기독교 운동과 한글 운동을 함께 펼쳤다는 점도 자주 언급된다. 그의 생애나 저술에 대한 두드러진 비판은 공개된 자료에서 확인되지 않는다.

함께 보기 6

참고한 자료 6곳
  1. 오리 전택부 서울YMCA 명예총무 별세 - 한국일보
  2. 전택부 - 위키백과
  3. 한국기독교사 연구의 어제와 오늘 (이만열)
  4.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역사
  5. 한국교회 성장과 그 둔화 현상의 교회사적 고찰 - 교갱뉴스
  6. 한국YMCA100주년 기념 국제심포지엄

본문은 이 자료들을 참고해 새로 쓴 글이며, 자료의 글을 옮겨 싣지 않았습니다.

첫 글: AI 초안 · 마지막 수정 2026-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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