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로 보는 창세기전 · 31편 / 모두 50편
길르앗의 돌무더기
창세기 31장을 한 편의 소설로 풀어 쓴 글입니다. · 풀이와 해석이 있는 글로 보기
양털 냄새가 짙게 밴 장막 그늘에서 야곱은 그 말을 들었다.
"야곱이 우리 아버지 것을 다 빼앗았어. 우리 아버지 재산으로 저렇게 큰 부자가 된 거라고."
라반의 아들들이었다. 우물가 쪽에서 들려온 목소리는 낮지 않았다. 야곱은 손에 쥐고 있던 고삐를 천천히 내려놓았다. 바람이 불어와 장막 자락이 펄럭였고, 멀리서 양 떼가 울었다.
그날 저녁 야곱은 라반의 얼굴을 보았다. 등불 아래 앉은 외삼촌은 그를 바로 보지 않았다. 인사에 돌아오는 대답은 짧았고, 눈길은 그의 어깨 너머 어딘가에 머물렀다. 전과 같지 않았다. 스무 해를 한 지붕 아래 보낸 사이에, 무언가가 소리 없이 식어 있었다.
그 무렵 여호와께서 야곱에게 말씀하셨다.
"네 조상의 땅, 네 친족에게로 돌아가거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
이튿날 야곱은 사람을 보내 라헬과 레아를 들판으로 불렀다. 그의 양 떼가 풀을 뜯는 곳, 라반의 장막에서 멀리 떨어진 자리였다. 두 여인이 도착했을 때 해는 이미 높이 떠 있었고, 마른 풀 위로 아지랑이가 일렁였다. 야곱은 지팡이에 몸을 기댄 채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그대들 아버지의 얼굴을 보니, 나를 대하는 것이 전과 같지 않소. 그래도 내 아버지의 하나님은 나와 함께 계셨소."
그는 두 아내를 번갈아 보았다.
"그대들도 알다시피, 나는 힘을 다해 그대들 아버지를 섬겼소. 그런데 그대들 아버지는 나를 속이고 내 품삯을 열 번이나 바꾸었소.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막으셔서 나를 해치지 못하게 하셨소. 그가 점 있는 것을 네 삯으로 하라 하면 온 양 떼가 점 있는 새끼를 낳았고, 얼룩무늬 있는 것을 네 삯으로 하라 하면 온 양 떼가 얼룩무늬 있는 새끼를 낳았소. 이렇게 하나님께서 그대들 아버지의 짐승을 빼앗아 내게 주셨소."
바람이 잦아들었다. 야곱의 목소리가 한층 낮아졌다.
"양 떼가 새끼를 밸 무렵, 나는 꿈을 꾸었소. 눈을 들어 보니 암양들을 타는 숫양이 모두 얼룩무늬 있는 것, 점 있는 것, 아롱진 것이었소. 그때 꿈속에서 하나님의 사자가 나를 불렀소. '야곱아.' 내가 '제가 여기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그가 말씀하셨소. '눈을 들어 보아라. 양 떼를 타는 숫양이 모두 얼룩무늬 있는 것, 점 있는 것, 아롱진 것이다. 라반이 네게 한 모든 일을 내가 보았다. 나는 벧엘의 하나님이다. 네가 거기서 기둥에 기름을 붓고 내게 서원하였다. 이제 일어나 이곳을 떠나 네가 태어난 땅으로 돌아가거라.'"
말이 끝나자 들판에는 풀벌레 소리만 남았다. 라헬과 레아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먼저 입을 연 것이 누구였는지, 두 사람의 대답은 하나였다.
"우리가 아버지 집에서 무슨 몫이나 물려받을 것이 남아 있겠어요? 아버지는 우리를 팔았고, 우리 몫으로 받은 값마저 다 써 버리셨어요. 아버지는 우리를 남처럼 여기시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아버지에게서 거두어 가신 재물은 모두 우리와 우리 자식들의 것이에요. 그러니 이제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말씀하신 대로 다 하세요."
야곱은 일어났다.
라반이 양털을 깎으러 멀리 나간 때였다. 털 깎는 칼이 번뜩이고 양들의 울음이 골짜기를 메우는 철, 집은 비어 있었다. 그 틈에 라헬은 아버지 집에 모셔 두었던 신상들, 드라빔을 몰래 훔쳐 냈다.
야곱은 자식들과 아내들을 낙타에 태웠다. 밧단아람에서 얻은 모든 짐승과 모든 재물을 이끌고, 가나안 땅에 있는 아버지 이삭에게로 길을 잡았다. 그는 아람 사람 라반에게 떠난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동트기 전의 푸른 어둠 속에서, 짐을 실은 낙타들의 방울 소리가 하나둘 멀어져 갔다. 그는 모든 재산을 이끌고 강을 건너 길르앗산을 향해 달아났다.
사흘이 지나서야 야곱이 도망쳤다는 소식이 라반의 귀에 들어갔다.
라반은 친족들을 모아 뒤를 쫓았다. 이레 길이었다. 모래바람이 그들의 얼굴을 때렸고, 밤마다 꺼져 가는 모닥불 곁에서 그들은 말을 아꼈다. 마침내 길르앗산에 이르러 그들은 야곱을 따라잡았다.
그날 밤, 하나님께서 꿈에 아람 사람 라반에게 나타나 말씀하셨다.
"너는 조심하여라. 야곱에게 좋다 나쁘다 아무 말도 하지 마라."
야곱은 산 위에 장막을 쳐 두고 있었다. 라반과 그의 친족들도 같은 길르앗산에 장막을 쳤다. 두 진영 사이로 아침 안개가 흘렀다. 이윽고 라반이 야곱 앞에 섰다. 그의 옷자락에는 이레 길의 먼지가 그대로 앉아 있었다.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나 모르게 내 딸들을 칼로 사로잡은 포로처럼 끌고 가다니. 어찌하여 나를 속이고 몰래 도망쳤느냐? 내게 말만 했어도 나는 즐겁게 노래하며 북과 수금을 울려 너를 보냈을 것이다. 너는 내가 손자들과 딸들에게 입 맞출 틈도 주지 않았다. 참으로 어리석은 짓을 하였구나."
라반의 목소리가 높아졌다가 문득 가라앉았다.
"내 손에는 너를 해칠 힘이 있다. 그러나 어젯밤 너희 아버지의 하나님께서 내게 말씀하셨다. '너는 조심하여라. 야곱에게 좋다 나쁘다 아무 말도 하지 마라.' 이제 네가 아버지 집이 그리워 돌아가려는 것은 그렇다 치자. 그런데 어찌하여 내 신을 훔쳐 갔느냐?"
야곱이 대답했다.
"외삼촌께서 따님들을 제게서 억지로 빼앗으실까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외삼촌의 신은 누구에게서 찾으시든, 그 사람은 살아남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 친족들이 보는 앞에서 제게 있는 것 가운데 외삼촌의 것이 있는지 찾아보시고 가져가십시오."
야곱은 라헬이 그것을 훔친 줄 알지 못했다.
라반은 장막을 하나씩 뒤지기 시작했다. 야곱의 장막에 들어갔다가 나왔고, 레아의 장막에 들어갔다가 나왔고, 두 여종의 장막에 들어갔다가 나왔다.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그는 레아의 장막을 나와 라헬의 장막으로 들어섰다.
라헬은 이미 드라빔을 낙타 안장 밑에 밀어 넣고 그 위에 앉아 있었다. 장막 안은 어둑했고, 틈새로 스며든 빛줄기 속에 먼지가 떠다녔다. 라반은 짐 꾸러미를 풀고 깔개를 들추며 구석구석을 더듬었다. 라헬은 움직이지 않았다.
"아버지, 노여워하지 마세요. 마침 달거리 중이라 일어나 맞아 드릴 수가 없어요."
라반은 장막 안을 샅샅이 뒤졌으나 드라빔을 찾지 못했다.
그가 빈손으로 장막을 나섰을 때, 야곱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오래 눌러 두었던 것이 마침내 터져 나왔다.
"제 허물이 무엇입니까? 제가 무슨 죄를 지었기에 이렇게 불같이 저를 쫓아오셨습니까? 외삼촌께서 제 살림을 다 뒤지셨는데, 외삼촌 집 물건이 하나라도 나왔습니까? 있거든 여기 제 친족들과 외삼촌 친족들 앞에 내놓으십시오. 이분들이 우리 둘 사이를 판가름하게 하십시오."
그의 목소리가 산기슭에 울렸다. 친족들은 숨을 죽였다.
"이 스무 해 동안 저는 외삼촌과 함께 있었습니다. 외삼촌의 암양과 암염소가 새끼를 잃은 적이 없었고, 저는 외삼촌 양 떼의 숫양을 잡아먹은 적이 없습니다. 들짐승에게 찢겨 죽은 것은 외삼촌께 가져가지 않고 제가 채워 넣었습니다. 낮에 도둑맞은 것이든 밤에 도둑맞은 것이든 제가 외삼촌께 물어 드렸습니다. 낮에는 더위에 시달리고 밤에는 추위에 떨며, 눈 붙일 겨를도 없이 지냈습니다."
야곱은 숨을 몰아쉬었다.
"외삼촌 집에서 지낸 이 스무 해 동안, 두 따님을 얻으려고 열네 해, 양 떼를 얻으려고 여섯 해를 일했습니다. 그런데도 외삼촌께서는 제 품삯을 열 번이나 바꾸셨습니다. 제 아버지의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이 두려워하며 섬기는 분이 저와 함께 계시지 않았다면, 외삼촌께서는 틀림없이 저를 빈손으로 돌려보내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제 고난과 제 손의 수고를 보시고, 어젯밤 외삼촌을 꾸짖으셨습니다."
긴 침묵이 흘렀다. 라반은 야곱의 장막들을, 딸들을, 손자들을, 산비탈에 흩어진 양 떼를 천천히 둘러보았다.
"딸들은 내 딸이고, 자식들은 내 자식이고, 양 떼도 내 양 떼다. 네 눈에 보이는 것은 다 내 것이다. 그러나 오늘 내가 내 딸들과 그들이 낳은 자식들에게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 이제 오너라. 너와 내가 언약을 맺고, 그것을 너와 나 사이의 증거로 삼자."
야곱은 돌 하나를 가져다 기둥으로 세웠다. 그리고 친족들에게 말했다.
"돌을 모으시오."
사람들이 흩어져 돌을 날라 왔다. 거친 돌들이 하나둘 쌓여 무더기가 되었다. 그들은 그 무더기 곁에 둘러앉아 음식을 먹었다.
라반은 그 무더기를 여갈사하두다라 불렀고, 야곱은 갈르엣이라 불렀다.
"오늘 이 무더기가 너와 나 사이의 증거다."
라반이 그렇게 말했으므로 그 이름이 갈르엣이 되었다. 또 그곳을 미스바라고도 불렀다. 라반이 이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서로 떨어져 있을 때에도 여호와께서 너와 나 사이를 지켜보시기를 바란다. 네가 내 딸들을 괴롭히거나 내 딸들 말고 다른 아내들을 얻는다면, 우리 곁에 아무도 없을지라도 하나님께서 너와 나 사이의 증인이 되심을 잊지 마라."
라반이 다시 말했다.
"보아라, 내가 너와 나 사이에 세운 이 무더기를. 이 기둥을. 이 무더기가 증거이고 이 기둥이 증거다. 나는 이 무더기를 넘어 너를 해치러 가지 않을 것이고, 너도 이 무더기와 이 기둥을 넘어 나를 해치러 오지 마라. 아브라함의 하나님, 나홀의 하나님, 그들 조상의 하나님께서 우리 사이를 판가름하시기를 바란다."
야곱은 아버지 이삭이 두려워하며 섬기는 분을 두고 맹세했다.
해가 기울 무렵, 야곱은 산 위에서 제물을 잡아 제사를 드렸다. 제단에서 오른 연기가 붉은 하늘로 가늘게 풀려 올라갔다. 그는 친족들을 불러 빵을 먹였다. 그들은 함께 먹고, 그 밤을 산에서 보냈다. 별들이 길르앗의 능선 위로 쏟아졌고, 돌무더기는 어둠 속에 묵묵히 서 있었다.
이른 아침, 라반이 일어났다. 그는 손자들과 딸들에게 하나하나 입을 맞추고 그들을 축복했다. 그러고는 길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갔다.
이 글은 성경 본문이 아니라, 본문의 줄거리를 소설로 풀어 쓴 글입니다. 사건과 이름과 숫자는 본문을 따랐고, 풍경과 몸짓 같은 묘사는 읽는 맛을 위해 보탠 것입니다. AI가 쓴 초안에서 시작한 글이니 본문과 다른 곳이 보이면 알려 주세요.